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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걷고있는 여행자

[절망을 걷고 있는 여행자]너의 결혼식

by 육아육아 2013. 3. 8.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현상 중에 하나는 헤어진 옛사랑의 결혼 소식은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 의해서든 내게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복학을 하고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의 어느 봄날,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학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내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왕십리역에서 환승한 열차의 같은 칸, 같은 출입문 앞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친구도 결혼식에 왔다가 다시 집으로 내려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나를 만난 것이다.

학창시절 이 친구와 짝이 된 이후로 한 동안 친하게 지냈었다. 언젠가 한 번, 녀석이 다니고 있던 교회에 우연히 들리게 된 일이 있었고, 마침 그날 그곳에 있었던 그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를 통해 그녀를 더 많이 알고 싶어 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그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잦아졌다. 그리고 두 번에 거절 끝에 나는 그녀와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할 줄로만 알고 사랑을 하던……, 하지만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을 못 갔고, 그녀는 서울로 진학을 했다. 그것이 마지막인줄 몰랐는데,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이듬해 나 역시 서울로 진학을 했지만, 새내기 생활에 너무 충실했던 탓인지……, 어쩌다 보니 연락 한 번 못하고 세월은 흘렀다. 누군가에게 말해지는 내 첫사랑 이야기, 나름의 각색과 미화를 거친 아름다운 사연의 주인공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미 다른 사랑들이 훑고 지나간 내 기억 속에 그녀의 자리도 희미해질 즈음, 우연히 열차 안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녀와 같은 교회를 다니던, 내게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던……, 그리고 오늘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것도 오늘 내가 참석한 결혼식과 같은 장소였던 올림픽 공원에서…….

이미 멀어져버린 기억이고 늘 추억하며 살던 사람도 아니건만, 왠지 모를 무상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내 인생의 한 막이 끝난 것 같은 그런 느낌, 내 학창시절이 내게서 떠나가는 느낌.

자취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추억의 노래 하나를 클릭했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당시 히트를 했던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은 그녀 앞에서 내 가창력을 착각하기 위해 늘 부르던 노래였다. 하지만 교복을 벗은 후에,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작은 방안 가득 울리는 음악사이로 흩어지는 잔상들의 여운 속에서, 교복을 어떻게든 멋있게 입고 싶어하던 날라리 소년과 단정하게 여민 교복의 모범 소녀를 자기들의 시간으로 돌려보내주었다. 추억의 시간 속에서는 학창시절의 나와 영원한 사랑을 해달라는 바람과 함께…….

영원히 행복해요! 내 사랑!

 

- 2. 사랑, 엇갈린 너와나의 이야기 中 -

 

 

절망을 걷고 있는 여행자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미니
출판 : 스마트북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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