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보폭은 지난 삼십년 간의 결혼 기간 만큼 벌어져 있었다.
탄성을 잃은 스프링처럼 주욱 늘어난 그들의 거리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연신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뒤를 따랐고
그는 늙은 코끼리마냥 성큼성큼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앞길을 내었다.
연애한지 삼년째 되던 해 그는 조금씩 그녀의 느린 걸음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걸음이 느린 것은 게으름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모름지기 남자가 밖에서 하는 일에는 곰처럼 둔해야 하지만
집안 일에는 여우처럼 민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위인이었다.
상식적으로 옳든 그르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은 모두 그른 것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그의 말에 복종했고 복종한 시간만큼 멀어진 그들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어느날 그녀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쇼파에 누워 배를 긁으며 뉴스를 보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되겠어요."
그는 눈길은 커녕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못 들은 것인지 일부러 무시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더이상 안되겠어요."
남자는 그제서야 고장난 선풍기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이제 그만 놓아달라구요."
그는 귀찮게 앵앵대는 모기를 잡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키듯이 끄응 소리를 내며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다시 말해봐."
남자는 괴물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윽박지르듯이 되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제까지의 그녀와는 다르게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이혼하자구요."
그제서야 무언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한 남자는 다음 말을 뱉는 대신 그녀의 따귀를 때리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남자를 급습했다.
그녀는 자신의 느린 걸음걸이만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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