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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찍그림..그리고 글임

[감성포토 #9]걸어서 저 하늘까지

by 육아육아 2012. 8. 12.

 

 

언제쯤이면 사람이 하늘을 걸어다닐 수 있을까?

가을의 기운을 느낄 수 있기는커녕 기온이 40도에 육박하여

여러 생물체들을 괴롭히던 입추에 J가 말했다.

글쎄...곧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더위 먹은듯한 말을 받아들이기 싫어 차갑게 흘려보냈다.

그러나 J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은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하늘을 걸을 수 있는 날까지는 살고 싶어. K가 나를 살게 했던 것처럼......

순간 뜨거운 땀이 목덜미에서 허리께까지 한번에 미끄러져 내리는 물의 기운을 느꼈다

나는 그 말이 다른 의미이길 바랐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한 K는 J의 죽음까지도 대신할 수 있을만한 인물이었으니까.

 

2002년은 한국이 사상 첫 월드컵 4강에 진출하고 나의 길고긴 군생활이 끝난 해이기도 하지만

K와 J가 불같은 사랑에 빠진 해이기도 하다.

그 불길은 그들에게 나를 철저히 외면당하게 만들었고 단 한번의 연락도 받지 못하게 하였다.

덕분에 내가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난 단지 K가 잘 따르는 형이었고 J가 힘들때 의지할 수 있는 선배"였었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형의 결말은 관계를 깨닫게하고 스스로의 바닥을 알게 해주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열정적인 사랑을 지지해주었고

(물론 그들이 나를 만나주지 않았으니 내가 지지했다는 사실은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그들이 행복하기만 한다면 나란 존재따윈 잊혀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두달 전까진 그랬다.

 

정확히 십년이 지난 2012년 6월의 시작을 알리는 날에 J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뀐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십년은 강산도 바꾼다는데 사람 하나 잊기엔 충분함을 넘고도 남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J의 목소리를 잊지 않았고 아직도 가끔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다가 J를 떠올리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녀를 피할 이유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나 또한 J를 사랑했었으므로.

 

J의 선문답적인 말투는 예전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언제쯤 하늘을 걸을 수 있을까라니.

강산은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은 바꾸지 못하나보다.

아니면 너무 바뀌고 바뀌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던가.

 

J의 눈은 이미 하늘을 걷는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짐작했다. 그녀가 두발로 땅을 딛고 있을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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