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푸념
긴 장마비가 차라리 고마울 때가 있었다. 무기력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음이 여느 날과 같지만, 세상과의 단절과 격리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그 나마의 구실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만날 누군가가, 만나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또한 우울한 마음을 날씨 탓으로 돌리 수도 있었다. 흐림에 대한 동질감이나 동화(同化)라기보다는, 마음속의 흐림이 창밖의 흐림으로 묽어지는 삼투(滲透)에 대한 기대심리였던 것 같다. 그래서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 언제나 창밖의 하늘은 흐리고 창가엔 빗물이 흐르기를 바랐었다.
인생의 장마가 물러가기만을 기도하던 시절,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사연들로 나 자신의 상황을 위로하곤 했다.
‘저런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사실 세상에 저런 사람들이 더 많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 맘 편하자고 차라리 흐린 세상이기를 바라던 내 못난 모습. 햇살로 다가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계절이 나에겐 슬픔이었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만 산다면 ‘살아볼 만함’이 되어버리는 아름다운 성공신화들 역시 내게는 절망이었다.
‘나도 산다고 살았는데, 한다고 했는데…….’
이 나약하고도 솔직하지 못한 넋두리 때문에…….
- 1. 청춘, 결코 푸를수만은 없는 시절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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